
왜 우리는 카페에 집착하는 걸까? 세상에 갈 곳이 카페밖에 없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된 걸까?
카페에서 만나서 밥을 먹고 또 카페에 간다. 우리는 멋진 카페에서 나와 또 멋진 카페를 찾아간다. 정녕 한국인들은 모두 커피에 미친게 분명하다. 이렇게 말하면 사실 서글프다. 왜 우리는 카페 말고는 갈 곳이 없는 걸까? 나는 이런 고민을 한지 오래되었다. 카페 말고는 갈 곳이 없는 이 사람들을 위해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할까 하면서도 결국 내 발길 조차 카페로 향했다. 우리 모두가 카페의 늪에 발목이라도 잡혀있는 건 아닐까?

한국에만 데이트코스라는 말이 있다며?
미드를 보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주거공간이다. 뉴욕의 층고 높고 창이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사는 주인공들은 침실도 있고, 거실도 있고, 주방도 있는 집에 산다.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기만 하면 집에서 데이트를 한다. 거의 같이 산다. 동거도 아주 흔하게 한다. 집에서 한참을 놀다가 나가서 저녁 먹을까?라는 식의 하루를 보낸다. 그럼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나라에는 데이트코스 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이런 단어가 외국엔 없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럼 왜 우리나라에는 ‘데이트 코스’가 존재하는 걸까?
우리나라는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의 집에서 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생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결혼 전까지 독립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님과 같은 지역에 살면서 따로 나와 산다고 하면 왜?라는 의문에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도 흔하게 봐왔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뼈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유가 없으면 혼자 살지 않는다’라는 마음이.
그러니, 우리에게는 집데이트라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며 집 밖으로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데이트 코스가 존재하는 것.

엄마와 아줌마들이 거실을 점령한 이유를 깨닫는 나이.
어린 시절엔 엄마친구들이 자주 우리 집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아주 달달한 프림 커피와 과일 몇 조각을 깎아두고는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셨다. 그땐 그런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불편하기도 했다. ‘아줌마들은 왜 맨날 우리집에 오는 거야?!’하면서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근데 나이가 들어 내게 거실이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세상 조용하고 아늑한 내 집 거실이 최고의 카페이고 식당이란 것을. 옆 테이블의 시끄러운 소리 안들어도 되고,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눈치 안 봐도 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어도 되고, 심지어 배달이 안 되는 음식도 없으니 이 얼마나 천국인가?
나이가 들어보니 이제야 보인다. 거실의 기능이.

공간을 느끼고 싶어
그럼에도 우리는 ‘#카페스타그램’을 찾아 떠난다. 왜? 거실이 없어서? 아니면 커피가/빵이 맛있어서? 웬만해서는 아니다. 우리는 결핍을 채워 줄 ‘힙’함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한국 보통의 주거공간은 층고가 겨우 2.3m밖에 되지 않는다. 미드에선 흔한 그 높고 탁 트인 천장은 소수의 고급 빌라, 아파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 원룸에 사는 20-30대라면? 그곳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게다가 집주인의 눈치로 내 맘대로 인테리어 하나를 못한다. '벽에 못 박지 말 것’이라는 항목이 계약서에 쓰여 있으니 제대로 된 선반 하나 달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집, 안식처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핍을 채워 줄 곳을 찾아 떠난다. 단돈 5천 원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멋스러운 인테리어 속에서 이상을 채우는 것이다. 예쁜 찻잔, 감각적으로 흘러내린 초들의 무덤, 커다락 액자, 훤하게 트인 창, 특이한 조명, 관리하기 힘들어 보이는 초록색 식물들이 우리에게는 이상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카페투어’를 떠난다.

요식업 이라보단 부동산업이다.
나에게 카페는 단순한 요식업의 종류가 아니다. '커피맛이 끝내주는’, ‘파티시에의 디저트’가 주요 포인트가 아닌 카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카페는 예쁜,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인 것이다. 테이블당 5천 원에서 많게는 2~3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테이블을 점유하는 데에 타당한 임대료를 커피값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페는 부동산업이다. 점점 더 많은 카페가 빵을 판매한다. 사실 이 빵들이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의 것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모든 맛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 카페의 베이커리류는 특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객단가를 올리기 위한 상품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직접 구워내는 빵들이 기가막히게 맛있는 카페도 많으니 오해는 넣어두시길..

결국 카페는 우리들의 공동 거실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왜 우리는 카페 말고는 갈 곳이 없을까? 한국은 왜 재미있는 것이 없는 걸까?라는 질문을 무수히 많이 해오던 나였다. 이제는 아마도 그런 고민은 조금은 접어두게 될 것 같다. 우리들에게 모두 멋진 거실이 생겨난다고 해도 채우지 못하는 욕망과 결핍으로 인해 결국은 또 카페 투어를 떠나게 될 것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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